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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서성호 에베레스트 등반 사고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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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서성호 에베레스트 등반 사고

고 서성호(부경대학교산악회․33)는 ‘FROM 0 TO 8848’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2013 한국 에베레스트-로체 원정대’의 대원으로 참가, 5월 20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무산소(無酸素)’ 등정에 성공한 뒤 캠프4로 하산하여 텐트 안에서 수면 중 사망했다.

5월 24일 등반 사고 수습을 위해 유가족과 함께 카트만두에 도착, 김창호 대장을 비롯한 대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정상 등정 및 사고 당시의 개략적인 상황을 공지한다.

□ 등반 사고 경위

고 서성호 대원은 5월 19일 오후 8시(네팔시간)께 김창호(44) 대장, 안치영(봔트클럽·35) 대원, 전푸르나(서울시립대산악부·23·여) 대원, 그리고 고소등반포터 3명과 함께 사우스콜(South Col)에 있는 캠프4(7950m)를 출발했다.

김창호 대장과 서성호·안치영 대원은 무산소 등정을 시도했고, 전푸르나 대원과 고소등반포터 3명은 인공산소를 사용하며 다음날 새벽 4~5시께 해발 8500미터 지점에 있는 일명 ‘발코니’ 아래까지 진출했다. 그곳부터 안치영 대원은 무산소 등정을 포기하고 인공산소를 사용했고, 김창호 대장과 서성호 대원은 인공산소의 도움을 받지 않고 계속 정상으로 나아갔다.

다음날인 5월 20일 오전 7시 50분~9시께 김창호 대장을 비롯한 안치영·전푸르나 대원, 그리고 동행한 고소등반포터 2명(푸르 소나 셰르파, 락파 겔루 셰르파) 등 5명은 정상에 오른 뒤 하산을 시작, 오후 5~6시께 마지막 캠프로 무사히 내려왔다.

등정 당일 에베레스트 산군의 날씨는 쾌청했고 바람은 약했다. 다만 등정 후 하산할 당시인 오후 2~3시께 8000미터 이상에 화이트아웃과 눈이 조금 내렸으나 등반에는 지장이 없었다.

한편 서성호 대원은 일행보다 늦은 오전 11시 15분께 사다 낫덴지 셰르파와 함께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뒤 곧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인공산소의 도움을 받지 않고 무려 15시간가량 혹한에 노출됐던 서성호 대원은 몹시 지쳐있었다.

오후 2시 30분께 서성호 대원과 함께 하산하던 낫덴지 셰르파는 로체(8516m) 정상 등정 시도를 위해 로체 캠프4(7800m)에서 머물고 있던 오영훈(서울대농생대산악회·34) 대원에게 무선교신을 통해 서성호 대원이 컨디션이 좋지 않아 운행속도가 느리다고 알려왔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오영훈 대원은 사우스콜을 거쳐 발코니 직전까지 올라 낫덴지 셰르파와 서성호 대원을 만났다. 오영훈 대원은 서 대원에게 인공산소 사용을 적극 권유했으나 서 대원은 인공산소를 사용을 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후 오영훈 대원은 서 대원과 함께 밤 10시 30분께 사우스콜에 있는 캠프4에 도착했다.

당시 캠프 부근에서 촬영 중이던 KBS 영상제작팀의 임일진 감독이 건네준 물을 마신 서성호 대원은 임 감독에게 “형님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말을 건넨 후 안치영 대원과 공동으로 사용하던 텐트 안으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21일 새벽 1시께 재차 대원들이 인공산소 사용을 권했으나 서성호 대원은 괜찮다고 인공산소 사용을 사양했다. 하지만 서성호 대원은 잠을 들지 못하는 상태였다.

새벽 5시께 함께 잠을 잤던 안치영 대원이 베이스캠프로의 철수를 위해 일어나 서성호 대원을 깨웠을 때 그는 의식이 없었다. 상황을 보고받은 대원들이 텐트에 가보니 서성호 대원은 텐트 측면에 비스듬히 기댄 채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몸을 반듯하게 뉘려고 했으나 그의 몸은 이미 손과 다리가 굳어 있었다. 곧바로 인공산소 공급과 함께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등 2시간가량 대원들의 각고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생하지 못했고, 결국 원정대는 희망의 끈을 놓았다.

고 서성호는 ‘다이내믹 부산 희망원정대’의 대원으로 2006~2011년 8000미터급 12개 봉우리를 등정한 등반능력이 뛰어난 고산등반가였다. 특히 김창호 대장과는 2008~2011년 4년간 8000미터급 봉우리 10개를 함께 오른 환상적인 등반 파트너였다. 특히 10개 봉우리 중 마칼루(8463m)를 제외한 9개 봉우리(로체, 마나슬루, 다울라기리1봉, 캉첸중가, 낭가파르바트, 시샤팡마, 안나푸르나1봉, 가셔브룸 1봉·2봉, 초오유)를 무산소로 등정한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였다.

고 서성호 대원은 2006년 봄시즌 북동릉 루트(중국령 티베트)를 통해 이미 한 차례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바 있었다. 그래서 그의 등반 능력을 믿었기에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더라도 회복될 것으로, 또 그의 강한 정신력을 믿었다. 서성호 대원은 김창호 대장과 함께 한국 에베레스트 등반사상 처음으로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기에 동료대원들은 산소 사용을 권유한 반면 그의 의지 또한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등정 후 하산 도중 인공산소를 사용하면 무산소 등정으로 인정받지 못함).

고 서성호 대원은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으로 인한 산소 공급 부족, 그리고 급격한 체력 소모로 인한 후유증 등으로 수면 중 자연사한 것으로 추정된다(카트만두 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고 서성호 대원은 고통 없이 편안하게 잠든 모습이었다).

□ 시신 운구 및 장례식

원정대는 베이스캠프와 한국에 상황을 보고하고 시신운구 절차 협의를 시작했다.

5월 21일 에베레스트 등정으로 몹시 지쳐있던 대원들은 하산하고, 다음날 오영훈 대원이 사우스콜에 머물던 등반고소포터 9명을 고용, 서성호 대원을 캠프2(6450m)까지 내렸다. 이어서 23일 오전 11시께 헬리콥터 편으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 국립병원 영안실에 안치했다. 김창호 대장과 오영훈 대원은 고인과 함께 카트만두에 도착했고, 나머지 대원 3명도 다른 헬리콥터 편으로 이날 카트만두로 내려왔다.

한편 5월 24일 사고 수습을 위해 카트만두로 입국한 유가족들은 김창호 대장으로부터 등반사고 경위에 관한 당시의 상황을 보고 받고 고인을 힘들게 운구한 대원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25일 병원에 안치된 고인과 마지막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26일 오전 11시부터 몽키템플 화장장에서 유가족, 원정대원, 원정관계자, 현지교민 등 50여명이 모인 가운데 셰르파족 장례식으로 5시간 만에 화장(火葬)을 마치고 유골을 수습했다.

2013년 5월 27일

(사)대한산악연맹 부산광역시연맹 회장 홍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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